신입을 위한 나라는 없다.

기술을 배우면 오래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기술을 익히는 일에는 미래를 준비한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조직이 바뀌고 경기가 나빠져도 일할 자리는 남아 있으리라는 기대다. 기술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품었을 생각이다.
AI는 그 믿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오래 공부해 익힌 작업을 짧은 지시만으로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보다 지금까지 배운 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가 먼저 막막해진다. 기술을 배우지 않을 수도 없고, 배웠다는 이유로 안심할 수도 없다.
기업의 판단은 개인의 성취와 다른 기준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업무가 여전히 중요하더라도 그 일을 담당할 사람의 수는 줄일 수 있다. 보안이 중요해진다고 모든 보안 직무의 채용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인력이 더 넓은 범위를 담당하거나 외부 서비스가 업무 일부를 맡을 수도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고용을 생각할 때에는 두 가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일을 할 사람을 시장은 얼마나 더 필요로 하는가. 두 질문의 답이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같은 AI 앞에서, 신입과 경력자는 다른 계산서를 받는다
경력자에게 AI는 미뤄 두었던 일을 처리할 여력을 준다. 분석용 코드를 작성하고, 낯선 형식의 자료를 정리하고, 여러 가설을 시험하는 비용을 낮춰 준다. 무엇을 확인할지 알고 결과의 오류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기회다.
취업 준비생에게는 같은 변화가 다르게 다가온다. 입사 후 맡으며 배울 것으로 기대했던 일이 먼저 자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입을 채용해 가르칠지, 기존 직원에게 더 좋은 도구를 제공할지 고민하는 조직에서는 채용을 미루는 선택도 가능해진다.
한국은행의 2026년 8월 보고서도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청년 고용이 위축되는 흐름을 다뤘다. 다만 연구진은 이를 AI만의 직접적인 효과로 단정하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의 채용 조정과 경력직 중심 채용, 기업 내부 교육의 약화 등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취업난을 전부 AI 탓으로 설명하기에는 아직 구분해야 할 원인이 많다.1
그럼에도 채용 현장에서 우려할 만한 구조는 분명하다. 기업이 경력을 요구하는 수준은 높아지는데, 그 경력을 처음 쌓을 자리는 줄어들 수 있다. 이미 일하는 사람은 AI와 함께 성장하고, 시작하지 못한 사람은 실무 경험을 증명하라는 요구 앞에 머무른다.
더구나 경력자에게 유리한 상황도 영구적이지는 않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조직은 그 생산성을 새로운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처음에는 여유였던 것이 곧 기본 업무량이 되는 식이다. AI로 성과를 높였다는 사실과 그 성과가 고용 안정이나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사실 사이에는 조직의 선택이 놓여 있다.
신규 유저가 없는 게임은 누구를 위해 남는가
온라인 게임을 떠올리면 이 문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오래된 게임에 숙련된 이용자만 남아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공략은 정교하고 장비 수준도 높다. 기존 이용자끼리는 어려운 콘텐츠를 빠르게 해결한다. 그러나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설명 없이 전제된다. 경험이 부족해 파티에 들어가지 못하고, 파티에 들어가지 못해 경험을 쌓지 못한다.
이때 남아 있는 이용자의 평균 실력은 높아 보일 수 있다. 초보자가 사라진 결과일 수도 있는데, 평균만 보면 게임이 더 건강해졌다고 착각하기 쉽다. 기존 이용자가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면 그 빈자리를 채울 사람은 부족해진다.
고용시장을 게임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다만 경력자가 새로 길러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 비유가 유효하다. 오늘의 숙련자는 과거 어느 조직이 미숙한 사람에게 시간과 일을 맡긴 결과다. 경력직 채용은 한 기업의 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지만, 모든 기업이 같은 선택을 한다고 산업 전체의 숙련자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신입이 사라진 조직은 당분간 더 효율적으로 보일 것이다. 설명하고 검토하는 시간이 줄고, 익숙한 사람끼리 일하니 소통도 빠르다. 그 성과를 평가할 때에는 몇 년 뒤 누가 업무를 이어받을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교육비를 줄인 결정이 미래의 채용비와 인력 공백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지금까지 배운 기술은 어디에 남는가
그렇다고 기존의 공부와 경험이 무의미해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험이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지 더 엄격하게 살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오터는 「Applying AI to Rebuild Middle Class Jobs」에서 AI가 더 많은 노동자에게 전문적인 판단을 수행할 능력을 제공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이 AI의 도움을 받아 이전에는 맡기 어려웠던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논의다. 전문성이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이며,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아니다.2
이 관점을 포렌식에 적용해 보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도구로 흔적을 추출하는 방법을 아는 것과, 그 흔적이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으며 무엇까지 증명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은 서로 다른 숙련이다. AI가 타임라인을 빠르게 정리해 주더라도 기록이 없는 구간을 어떻게 해석할지, 서로 충돌하는 증거 중 무엇을 추가로 확인할지는 남는다.
배운 기술은 이런 판단의 근거로 쓰일 때 오래 남는다. 특정 도구의 사용법은 바뀌어도 파일 시스템과 운영체제의 동작을 이해한 경험은 새로운 결과를 검토하는 데 쓰인다. 다만 그 지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바뀐 도구를 이용해 실제로 더 넓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는 완성된 결과물만으로 개인의 역량을 판단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보기 좋은 보고서와 작동하는 코드를 만드는 문턱이 낮아질수록, 왜 그 방법을 선택했는지와 어디에서 실패하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본다.
이 변화는 신입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AI로 작은 프로젝트를 끝까지 수행하며 이전보다 넓은 범위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물을 제출하는 경험에 머물러서는 판단력이 쌓이기 어렵다. 결과를 원본과 비교하고, 오류를 고치고, 다른 사람의 검토를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직이 마련해야 할 학습 기회도 그쪽으로 옮겨 가야 한다.
코드를 싸게 만들 수 있다면, 창업은 쉬워지는가
고용의 불확실성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창업에 눈이 간다. AI 덕분에 적은 인원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누군가의 채용 결정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일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시도할 비용이 낮아진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예전이라면 개발 인력을 구하지 못해 접었을 아이디어를 직접 시험할 수 있다. 작은 시장이나 좁은 업무를 대상으로도 사업 가능성을 검토할 여지가 생긴다.
다만 코딩 비용이 0원에 가까워진다는 표현을 사업 전체에 적용하면 계산이 어긋난다. 시제품 이후에도 검증과 운영, 보안, 고객 지원에 비용이 든다. 무엇보다 고객이 기존 방식을 버리고 이 제품을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베네딕트 에번스는 「AI, tools and transformation」에서 코드를 쉽게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짚는다.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알아내고,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정하고, 조직이 실제로 그것을 사용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여러 부서의 업무가 얽혀 있는 기업에서는 도구 하나의 성능만으로 도입을 결정하기 어렵다.3
한국 기업을 고객으로 삼는 보안 서비스를 구상해 봐도 마찬가지다. 담당자가 기능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계약이 끝나지는 않는다. 데이터를 어디에 두는지, 기존 시스템과 연결할 수 있는지, 문제가 생기면 누가 언제 대응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창업자가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와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약속할 수 있는 범위는 따로 계산해야 한다.
경쟁자도 같은 도구를 쓸 수 있다는 점은 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개발비를 절약한 이익이 창업자에게 남을 수도 있지만, 비슷한 제품이 늘어나 가격 경쟁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만드는 일이 쉬워질수록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일과 고객에게 도달하는 일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진다.
AI 사업의 첫 고객은 기술보다 구체적인 것을 산다
폴 그레이엄의 「Do Things That Don’t Scale」은 창업 초기에 직접 고객을 찾고 세심하게 돕는 일을 강조한다. 아직 자동화하거나 대규모로 반복하기 어려운 과정에서 고객을 이해하고 제품을 고칠 근거를 얻는다는 조언이다.4
AI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도 이 조언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제품을 만드는 속도가 빨라지면 고객을 만나기 전에 기능부터 늘리기도 쉬워진다. 개발이 잘 진행된다는 감각이 사업도 잘 진행되고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포렌식 업무를 돕는 서비스를 만든다면, 분석가가 매번 어디에서 멈추는지부터 확인할 수 있다. 자료를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리는지, 결과를 검증하는 데 시간이 드는지, 다른 부서에 설명할 때 일이 지연되는지에 따라 필요한 제품은 달라진다. 멋진 시연에서 잘 보이는 기능과 실제로 비용을 줄여 주는 기능이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창업의 가능성을 판단한다면 첫 결제 이후를 더 오래 살펴볼 것이다. 다음 달에도 사용하는지, 문제가 생긴 뒤에도 계약을 유지하는지, 지원에 투입한 시간을 제외하고도 수익이 남는지 확인하고 싶다. AI가 있다는 사실보다 고객의 업무가 나아졌다는 사실이 반복해서 입증돼야 한다.
회사를 떠나는 순간 이런 문제를 대신 맡아 줄 조직도 사라진다. 회사에서는 분석에 집중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가 계약을 협의하고 대금을 회수하며 고객의 요구를 조율한다. 월급에는 이러한 분업과 수입의 예측 가능성이 포함돼 있다.
창업은 그 역할까지 자신이 맡는 선택이다. 따라서 고용이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AI가 더 빠르게 코드를 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코딩 비용이 0원에 가까워 진다는 이유만으로 창업이 더 안전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고객을 이해하고 약속을 이행할 조건을 확인해 나간다면, 창업은 고용 불안정에서 시작했을지라도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매력을 느낀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다음 사람이 시작할 자리다
AI를 생각할수록 개인의 생존과 산업의 지속성을 따로 떼어 보기 어렵다. 지금 일하는 사람에게는 도구를 익히고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일이 시급하다. 나 역시 이미 익힌 기술에 기대기보다, 그것으로 앞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계속 확인하려 한다.
동시에 경력자에게 유리한 변화를 산업 전체의 진전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려 한다. 한 사람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동안 다른 사람이 경험을 시작할 기회를 잃고 있다면, 그 이익과 비용은 서로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 지금 내 업무가 편해졌다는 사실만으로 변화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D4C를 이끄는 입장에서도 함께 연구하는 사람이 결론을 스스로 설명하고 검증할 수 있는지에 더 관심을 두고 싶다. 자동화된 결과를 빠르게 얻는 것과,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게 되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배움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허용하는 팀이 오래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창업 역시 열어 둘 만한 선택이다. 다만, 회사를 떠난다는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미래의 고객에게 필요한 일을 찾아 수행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생활까지 고려할 수 있을 때 창업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까지는 충분히 고민하면서 지내고 싶다.
현재 AI 시대에서는 기술을 익히면 평생의 자리가 보장된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배울 이유는 남아 있다. 달라지는 환경을 이해하고, 자신의 선택을 판단할 근거를 갖추기 위해서다. 누구에게나 처음에는 서툴게 일할 기회가 필요하다. 내가 AI로 절약한 시간 중 일부를 다음 사람이 그 배움의 기회를 얻는 데 주고 싶다. 오래된 게임의 고질적인 문제처럼, 지금의 숙련자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이 분야에 일할 사람이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한 글과 자료
- 한국은행, 「청년고용 위축, AI 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 과제」, 2026.
- David Autor, 「Applying AI to Rebuild Middle Class Jobs」, 2024.
- Benedict Evans, 「AI, tools and transformation」, 2026.
- Paul Graham, 「Do Things That Don’t Scale」, 2013.